#디스크, 고마워! 진짜 나로 살게 해줘서
16개월 딸을 둔 초보맘이자, 기자맘이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30대의 나는, 어쩌면 결혼조차 안했을지도 모른, 정의사회를 규현하는 언론인(?)이었다. 부를 쌓기보다는 업계에서 인정받길 원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취재하는 종군기자가 된다거나, 권력자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돌직구 기자가 된다거나, 시청자에게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뉴스'를 전하는 앵커가 된다거나.
2011년 겨우 기자 명함을 받았을 뿐,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깜냥도 안되면서 오기로 독기로 하루하루 버텼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내가 꿈꾸던 '정의로운 기자'(?)가 될 줄 알았다. 디스크 판정을 받기 전까진.
잠이 들수 없을 만큼 두통이 너무 심해서 병원 투어를 하다 목 디스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가 2014년 3월이다. 딱 두 달 뒤,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통증은 이전부터 있었다. 허리가 늘 욱신욱신 아프고, 펴기 힘들고, 매일은 아니어도 다리가 저렸다. 목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도 목을 좌우, 위아래로 돌리기가 힘들었고, 어떤 날은 오른쪽 팔이 어깨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저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낳은 직업병이줄 알았지. 만 28살에 디스크라니, 말이 돼?
그때부터 병원 투어는 업종 불문, 지역 불문이었다. 허리 치료 잘 한다는 병원은 다 다녔다.
"빨리 나아서 얼른 일해야지" 이 생각뿐이었다. 경추 요추 디스크 판정 받기 전부터 통증 때문에 병원을 다니긴 했으니, 병원비에만 족히 1천만원은 들었을 테다. MRI 찍는 것부터, 정형외과, 물리치료, 도수치료, 운동치료, 침, 추나, 한약 등 한방패키지.. 그것도 이병원 갔다 저병원 갔다. 수소문해 민간요법도 해보고. 시술 날짜 잡았다, 주변의 만류로 취소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만 34년 인생 중 가장 잘한 일이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건 바로 운동이다. 운동은 근육뿐만 아니라 멘탈과 마인드까지 탄탄하게 만들었다. 동기 부여를 위해 피트니스 대회에 나갔고, 은메달을 땄다. 자신감이 생겼다. 디스크 환자가 오랫동안 운동을 해온 경쟁자들과 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뿌듯했는데, 입상이라니! 2등이라니!
#"나도 할 수 있구나"
피트니스 대회 경험은 자신감도 줬지만 끈기와 인내가 무엇인지, 또 '겸손함'까지 가르쳐 줬다. 체지방 1kg을 감량하고 근육 1kg을 늘리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 코앞에 있는데 침만 삼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있는 건 '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술 안 먹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놀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 운동으로도 감정을 콘트롤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취미'가 생긴 건 내 삶의 질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매일 반복되던 똑같은 하루가 아닌, 오늘 이 시간이 흐르는 게 너무너무 아쉬워졌다. 하지만 내일이 또 기대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또 오니까.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전엔 항상 부족하기만한 내 자신을 보채고 옥죄고 살았는데,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앞만 보며 살던,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수식어로 붙이기 위해 살던 껍데기는 과감히 버렸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빛나는 현재를 갉아먹지 않기로 했다. 막 살겠단 건 아니라^^;; 현재 하고 싶은 걸 미래를 위해 참고 살진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그건 결국, 진짜 나, 기자 아무개가 아닌, 진짜 김연지, 나 자신으로 살게된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다들 그런다. "언젠간 꼭 거기를 가야지. 부서 옮기면 그때부터 영어 공부해야지. 애기 낳으면 운동해야지~" 이런 식의 결심을 한다.
나도 그랬다. 춤 추는 걸 무지 좋아했다. 고등학교 땐 댄스 동아리 부장이었다. 대학가서도 춤추고 싶었지만, 취업 준비하느라, 입사하고선 잠 잘 시간도 없었기에 취미를 하겠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취미 발레를 보게 됐고,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연차가 좀 차면 그땐 꼭 발레를 배워야지' 이러다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그렇더라. 계획한대로 다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했을 때, 미래에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든 것들이, 미래 그 시간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꿈꿨던 것을 더 나중의 미래로, 보내야만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 "뭐든 할 수 있을 때 하자"
회사 눈치? 당연히 회사에 민폐를 끼쳐서는 안되지만, 퇴근 후 여가시간에 하는 일은 눈치보지 않기로 했다. 눈치본다고 해서 상사가 날 특별히 챙겨줄 것도 아니고, 내가 행복해지는 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유트브 시대다보니 라디오 리포트+온라인 기사만 쓰는 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영상은 달랐다. 뭘 찍든 간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영상이고, 이건 내 기록이자 발자취이고 커리어라 자부한다. (한국기자협회소속) 대한민국 1호 기자 유튜버가 됐고, 강의도 다니고 있다.
요가 강사 자격증도 땄다. 요가가 심신 수련에 좋대서 배워봐야겠다 했는데, 이왕 하는 거 강사 자격증 따두면 좋겠단 생각에서였다. 미래에 이민갈지도 모르는 1억분의 1확률을 감안해, 해외에서도 통용되는 요가 자격증을 땄다.
인생이 즐거워졌다. 퇴근 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에너지가 나고 업무시간 효율도 높아졌다. 회사에 고마운 마음도 생겼다. 월급을 주시니 이 돈으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지 않나.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여가시간에 스트레스를 잘 푸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됐다. 인생이 아름다워졌고, 그토록 소식이 없던 아기가 찾아왔다. 결혼 만 5년 만의 임신이었다.
딱 2년 전 이맘 때다. 아기 소식을 알게 됐을 때가. (지금은 2020년 4월 11일/ 2018년 4월 4일 4주차인 걸 알게 됐어요^^) 10개월을 품었고, 아니는 벌써 16개월에 접어들었다.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며 허리는 다시 안좋아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또 무너질 내가 아니다. 매일 홈트를 2시간씩 시작했고 지금은 주말마다 춤추러 간다. 취미 방송 댄스다. ^^ 2시간 동안 음악에 맞춰 춤추고 나면, 한주간의 회사 육아 스트레스가 모두 해소되는 듯 하다.
한주간 또 살아갈 에너지 충전!!!
춤추고 나면 허리가 아프긴 하다. 그래도! 둘째를 갖게 되면, 나이 마흔이 넘어가면 정말 물리적으로 현실적으로ㅠㅠ 좋아하는 춤을 출 수 없잖아.!
"할 수 있을 때 하자"
나는 그렇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오늘보다 더 행복한 내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열심히만 살았을 뿐인데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거냐"
원망도 많이 했다.
돌이켜보면, 진짜 성공이 뭔지 알려주신 것 같다.
비록 허리는 아프지만,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렇기에 좀 더 나 자신을, 주변을 돌아보며
내 삶의 수단에 얽매이지 말 것.
세속적인 성공 말고, 진짜 나 자신으로, 행복하게 살라고 알려주신 것 같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성공한 삶이 아닐까.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자는 여호와시니라.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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